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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순간들

chunjy92 2017. 6. 23. 14:20

1. 무중력의 순간이 싫었다. 어릴 적 싱가포르로 향하던 비행기는 1초라는 긴 시간동안 자유낙하를 했다고 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은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듯 하다.

2. 초등학교 1학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항공기 추락률이 궁금해졌다. 눈 앞에 서있던 아시아나가 더 낮다는 소식에 안도했다. 그런데 비행기 사고는 왜 이렇게 드물까.

3. 롤러코스터는 타지 못한다.

4. 중학교 1학년. 벤쿠버에서 빅토리아로 향하는 소형비행기는 온몸으로 바람을 받아내며 비틀거린다. 나도 같이.

5. 중학교 3학년. 방과 후 부모님 차를 기다리던 중 구성댁이 찾아왔다. 어디 갈 일이 있으니 같이 기다리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먼 곳을 응시했고 머쓱해진 구성댁은 멀찍이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내 옆모습을 바라봤을 것만 같다.

6. 그라우스(Grouse) 보다는 대형 케이블카가 없는 시모어(Seymour) 스키장을 선호했다. 3,40명을 태운 그라우스 케이블카는 상승에 상승을 거듭하다가 최고점에서 덜컹, 하고는 크게 기울며 흔들린다. 무섭다는 말에 구성댁은 급소에 힘을 주고선 숨을 천천히 내쉬라고 했다. 그러곤 아플 정도로 손을 꽉 쥐어주었다.

7. 고등학교 3학년. 홀몸으로 한국으로 향했다. 비행기는 이륙과 착륙이 가장 위험하다고 했다. 여권을 고이 모셔둔 디올 가방을 손에 꼭 진 채 흡,하,흡,하를 반복했다.

8. 대학교 1학년. 밤잠을 설쳐 드림렌즈 효과를 못 본 채로 기내에 올랐다. 아틀란타란 미지의 장소에 반실명 상태로 도착한다는 사실에 긴장했다. I-20 원본을 깜빡해서 불확실해진 미국입국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런 와중에 큰 비행기는 큰 흔들림 없이 14시간 동안 나를 태워주었다. 

9. 하늘에서 본 유타는 아름다웠다.

10. 몬트리올에 도착하자 초등학생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11. 대학교 1학년. 복학하는 비행기에서 학교 선배 옆자리에 앉아 얘기를 들었다. 훗날 두세번 밖에 연락이 닿지 않았다.

12. 어릴 적 구성댁은 구성이 아닌 다른 곳에 살았다. 하루는 지하철로 혼자서 집에 갈 수 있겠냐고 물어보자 그래보겠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10발자국 뒤에서 내 뒤를 따랐다. 말을 걸지도, 도와주지도 않았다. 나는 어둠속을 헤쳐 나와 피라미드처럼 생긴 올림픽공원역 입구 계단을 올라왔다. 집 앞 계단을 오를 즈음 구성댁은 뒤돌아 갔다.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13. 대학교 3학년. 때 아닌 폭우로 아틀란타 공항이 거의 마비되었던 엊그제. 7시 반 비행기는 8시 15분으로, 이내는 다시 9시로 지연되었다. 악천후를 뚫고 나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최근에 엄마가 말해준 내 점이라고 하는 얘기를 떠올린다. 나는 믿지 않지만 믿어야겠다. 구성댁 당신들이 믿었다면 나는 그 말을 당신들의 목소리로 받들어 곧이 곧대로 믿어버려야겠다. 그 길을 따라야겠다.

14.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손길과 시선은 생생하다. 가슴이 먹먹해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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